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무 덴노 (문단 편집) ==== [[신토]] ==== 일본의 전통적인 토속신에 대한 제사를 중시했던 덴무 천황은 지방에서 행해지던 제사의 일부를 국가 단위의 제사로 승격시켰다. 덴무 천황이 특별히 중시한 것은 [[이세 신궁]]이었다. 일찍이 진신의 난 때, 군사를 거느리고 이세를 찾았던 그는 세키타가와(迹太川) 부근에서 [[아마테라스 오미카미]]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올렸는데, 이는 구체적으로는 이세 신궁에서 모시고 있는 신이기도 한 아마테라스에게 전승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. 그렇게 내란을 승리로 이끈 뒤, 천황은 딸인 오오쿠노 히메미코를 이세 신궁(진구)에 보내어 사이오(齋王, 재왕)로서 이세 진구를 섬기게 했다. 덴무 4년(675년) 2월 13일에는 딸 도오치노 히메미코(十市皇女)와 조카(덴지 천황의 딸) 아베노 히메미코(阿閉皇女, 훗날의 [[겐메이 덴노]])가 이세 신궁에 참배했다. 이세 진구의 모든 신전을 20년에 한 번씩 다시 짓는다는 '''시키넨센구'''(式年遷宮)의 제도를 처음 발안한 것도 덴무 천황이었다. 이세 신궁을 이스즈 강(五十鈴川)가의 현 위치에 세운 것도 덴무 천황으로, 그 이전에는 미야가와(宮川) 상류의 다키하라궁(滝原宮)에 이세 신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. '''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는 신격을 처음으로 창조한 것이 다름아닌 덴무 천황이었다는 설도 있다.''' 재궁이라는 것도 《[[고사기]]》나 《[[일본서기]]》에 따르면 유랴쿠 천황 때부터 시작해 스이코 천황 때까지 있었다고 하나, 실제로는 덴무 천황의 딸인 오오쿠노 히메미코가 최초의 재궁이라는 설도 있다{고대사학자 겸 군마 대학 명예교수 모리타 테이(森田悌)의 설}. 그 밖에, 덴무 3년(674년) 8월 3일에는 [[이소노카미 신궁]](石上神宮)에 오사카베노 미코(忍壁皇子)를 보내어 그곳에서 소장하던 신보(神寶)를 다듬게 했다. 이듬해 1월 23일에 여러 진쟈(신사)에 제사드린 것을 두고 '기넨노사이'(祈年祭)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. 4월 10일에는 닷타(竜田)의 풍신(風神)을 모시기 위해서 미노 왕 등을 파견했고, 히로세(廣瀬)의 대기신을 모시기 위해 하시히토노 오오카이(間人大蓋) 등을 사자로 파견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